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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학시절 교양과목으로 4학년 1학기를 꽉꽉 채우던시절, 고바우 영감의 작가 김성환 화백님이 우리학교 명예교수로 임명되어, 첫 교양 강의를 개설하셨다. 이름하여 '시사만화와 풍자'  부끄럽게도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시사만화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당시엔 살아있는 대한민국 시사만화 역사의 산증인이셨던 김성환 화백님을 불과 2~3m 앞에서 뵐 수 있어, 매우 영광된 시간들이였다. 물론 해당 과목의 학점도 A학점으로 잘 마쳤다.
 
고바우 영감: 대한민국의 시대를 풍자하다
고바우 영감 소개
고바우 영감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사만화로, 김성환 화백이 그렸습니다. 1950년에 처음 등장한 이 만화는 1955년부터 동아일보에 연재되었고, 이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도 연재되었습니다. 2000년까지 약 45년 동안 총 14,139회가 연재된 이 만화는 대한민국 언론사상 최장기 연재 네 컷 만화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다뤄진 주제
고바우 영감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풍자적으로 다루며, 다양한 정치, 사회적 사건과 문화 현상을 표현했습니다. 주요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정치 풍자: 독재정권 시절부터 민주화 운동까지, 고바우 영감은 한국 정치의 다양한 변화를 풍자적으로 그렸습니다. 대통령 선거, 국회 의정 활동, 정치인의 비리와 같은 주제를 다루며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2. 사회 문제: 빈곤, 실업, 교육, 주택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조명했습니다. 이를 통해 대중들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과 사회적 불평등을 공감하게 만들었습니다.
  3. 문화 현상: 시대별 유행과 대중문화를 풍자적으로 다루며, 한국인의 일상생활을 생생하게 그렸습니다. 전통과 현대 문화의 충돌, 패션 트렌드, 대중음악 등 다양한 주제가 등장합니다.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고바우 영감은 단순한 만화가 아닌, 사회적 비판과 풍자의 도구로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만화를 통해 대중은 당시 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비판적 사고를 키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바우 영감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후배 만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1. 사회 정의와 평등: 고바우 영감은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다루며, 빈곤과 실업, 주택 문제 등 사회적 불평등을 조명했습니다. 만화를 통해 독자들은 사회 정의와 평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 정치 비판과 참여: 고바우 영감은 정치인의 비리와 독재정권의 폭압성을 풍자하며, 정치적 참여와 비판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독자들에게 정치적 인식을 고취시키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상기시켰습니다.
  3. 인간성과 공감: 김성환 화백은 고바우 영감을 통해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고민을 그렸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서로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인간성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4. 언론의 자유: 고바우 영감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다양한 주제와 사건을 자유롭게 다루며 독자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들은 고바우 영감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사회적 비판과 공감의 도구로서 큰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줍니다. 만화를 통해 독자들은 사회와 정치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다양한 문제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에피소드

  1. 4.19 혁명: 1960년 4.19 혁명 당시, 고바우 영감은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며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만화를 그렸습니다. 이는 당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고바우 영감의 사회적 책임감을 보여주는 중요한 에피소드입니다.
  2. 전태일 열사: 1970년대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 열사의 희생을 다룬 만화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고바우 영감은 전태일 열사의 고통과 희생을 통해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을 조명했습니다.
  3. 김대중 납치 사건: 1973년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납치 사건을 다룬 만화는 독재정권의 폭압성을 강하게 비판하며,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풍자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김성환 화백에 대한 설명
김성환 화백은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1950년대부터 만화가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작품인 고바우 영감은 단순한 만화를 넘어, 한국 사회의 변화와 문제점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표현한 시사 만화입니다. 김성환 화백은 2013년 원화가 문화재로 등록될 만큼 한국 만화계에서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고바우 영감의 1958년 1월 23일 연재분 에서 주인공 고바우가 " 경무대는 똥 치우는 사람도 권력이 있다"면서 이승만 정권을 풍자

 

작품소개

고바우 영감의 1958년 1월 23일 연재분에서 주인공 고바우가 "경무대[2]  치우는 사람도 권력이 있다"면서 이승만 정권을 풍자했는데 이게 그만 자유당 높으신 분들의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김성환은 연행되었고 경범죄처벌법 제1조 9항 위반(출판물의 부당게재)[3]으로 인해 유죄 판결을 받아 벌금 450[4]을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고바우 영감은 꾸준히 연재되었고 2000년 1만 회가 넘는 장기 연재 끝에 완결했다.

이 사건 이전에 김성환은 1954년 사사오입 개헌으로 선거 없이 대통령직을 해먹은 자유당과 이승만을 비꼬는 시사만화로 이미 걸린 적이 있었는데 이걸 반대하다가 경찰에 끌려가 경무대 밖으로 쫓겨난 야당 의원을 그리면서 고바우 영감이 아파하는 야당 의원에게 "아니? 어쩌다가 그리 다쳤습니까?"라고 질문하자 "퍼런 제복을 입은 개(경찰관)에게 물렸다오"라고 답하는 내용이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시사만화계에 표현의 자유가 무한히 보장되었으나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군사독재 정권은 거듭해서 시사만화에 지속적인 탄압을 가하였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긴 했으나 현재도 '게이트키핑'이란 이름으로 신문사주와 데스크 주도의 검열이 횡행하고 있다.

하지만 김성환 화백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러 번 높으신 분들을 비꼬는 시사만화를 그렸다. 오죽하면 중앙정보부에서 '이 새끼 안되겠다'라며 아주 반 죽여야 한다고 하던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6.25 전쟁에 같이 참전하여 알게 된 미군 장병이 미국에서 유명 신문사 간부가 되었기 때문에 그를 함부로 처벌하면 미국 언론을 통해서 한국 정부에 대해 안 좋게 보도할 수도 있다고 그냥 넘어가 버렸다고 한다. 이는 김성환이 은퇴한 중앙정보부 인사에게 세월이 지난 후 직접 들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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